활자로 만나는 여행

생활 속에서 가볍게 산책하며 즐기는
야외 박물관 안성낙원역사공원

엄동설한에 꽃이 피는 매화는 추우면 추울수록 진한 향기를 품는다.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19와 막바지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이겨내리란 희망은 매혹의 향기로 다가온다.
매화처럼 추위를 이겨내며 봄을 찾아 멀리 떠나기보다는 안성 시내를 돌아보길 권한다. 안성 도심은 다채로운 매력이 있다.
120년 역사의 안성 성당, 아양동 미륵불, 안성 옛 시장을 보존한 추억의 6070거리 등 한두 시간 걸으면 다양한 역사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가볍게 산책하며 문화재를 접할 수 있는 안성 낙원역사공원의 매력을 소개한다.
시민명예기자 이원희
야외 박물관 안성낙원역사공원
낙원역사공원 석불좌상
안성 지역 내에 산재해 있던 석비들을 보존 관리를 위해 옮겨 놓은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와 계란형 얼굴에 좁은 이마와 눈썹이 매력적인 석불좌상(안성시 향토유적 제8호), 추운 겨울에도 줄기와 잎이 시들지 않는 인동덩굴 모양의 인동당초문이 조각되어있는 석조광배(안성시 향토유적 제9호), 1702년(숙종 28)에 건립된 이규수 유애비, 조명재 선정비, 남명익 불망비 등 46기의 석비가 일렬로 세워져 장관을 연출하는 낙원역사공원은 다양한 문화 유적이 보존되어있는 야외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낙원역사공원의 원래 이름은 안성공원이다. 그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근대적 공원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다. 1923년 이곳에 정구장이 있었고 기호정구 대회가 개최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26년 공회당이 들어서 당시 한창 활발하던 각종 시민단체의 회관으로 이용되어 단체의 집회와 운동회 장소로 이용되었다. 안성시장과 맞닿아 있는 공원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 및 문화의 공간으로 이용되어 그네뛰기, 활쏘기, 널뛰기 등 민속행사와 씨름대회를 개최되었던 곳이다. 안성의 중심적 문화 공원이었으므로 일제의 철폐계획을 주민들이 단결로 지켜내고 주민들의 모금 활동으로 근대적 공원으로 조성 유지해온 역사적인 공원이다.
석비
죽산에서 난을 진압한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9호)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항(1673~1728)은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의 손자로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 충청, 전라, 경상 4도의 도순무사(민란이 있을 때 백성을 평안하고 화목하게 안집(安集)하는 임시관직)로 임명되어 죽산에서 난을 진압하였다. 그 공로로 해은부원군에 봉해졌다가 후에 우의정에 임명된다.
공적을 기리기 위한 송공비(頌功碑)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네모진 받침 위에 둥글게 처리된 직사각형의 비문을 올린 형태이다. 비문은 우의정 조현명이 짓고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글씨를 썼다. 원래 이 비는 동본동에 있었으나 196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소박한 낙원역사공원 삼층석탑
(안성시 향토유적 제18호)
삼층석탑은 시내 여러 곳에 전해지던 부재(部材)를 수습하여 현재의 위치에 옮겨 놓은 것이다. 소박한 석탑의 구조와 양식으로 1층 탑신에는 사방불(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맡은 부처)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사방불은 전쟁에서 승리한 때에 건립된다. 안성 죽산에서는 1236년 몽골의 3차 침입 때 송문주 장군이 백성들과 힘을 합쳐 몽골군을 물리쳤다. 이때 전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석탑을 건립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낙원역사공원 풍경
낙원역사공원 삼층석탑-향토유적 제18호

안성낙원역사공원

  • 위치 안성시 낙원동 6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