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사이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시민명예기자 김나영
“나는 전부터
조선독립을 희망하고 있었다.”
안성은 한국독립운동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안성 人들의 가슴에 새겨져있는 민족의식과 항일전쟁은 독립운동의 밑바탕이 되었다.
최은식, 이근수, 이덕순, 최은식, 최두환, 남상우 등은 1919년 4월 1~2일에 걸친 안성군 원곡면 양성면의 독립만세시위 주동자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 올라가 광무황제의 장례를 참관한 뒤 독립만세시위를 직접 경험하고, 고향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거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3월 28일에 원곡으로 돌아온 이시연, 이시순 등과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고, 주민들을 원곡면사무소에 모이게 한 뒤 독립만세를 외쳤다. 원곡면의 만세시위는 면민들이 모여 3월 31일까지 산발적으로 계속되었다. 4월 1일 오후 8시경에는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천여 명의 만세시위 군중들과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원곡면장을 끌어내 일제 기관이 있던 양성면 동향리로 행진했다.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향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이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사진제공: 임종훈 주무관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되돌아 온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의 건물을 파괴, 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우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북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 등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한편 여성으로서 일제 감시대상에 오른 인물도 있다. 바로 안성군 대덕면 출신인 유해길이다. 당시 일제 감시대상 인물 카드를 보면, 1935년 공장 노동자들의 적색노동자조합 조직이 발각돼 종로경찰서에 검거됐다. 이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됐지만 1937년 5월 11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석방되었다. 안성의 독립운동가로 확실한 입증자료는 남아있지 않기에 추가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성 3·1운동에 참여한 인원은 6,000명에서 8,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일제 통치기구를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격렬하게 전개된 만세운동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군대를 동원하여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독립운동은 역사를 알아가고, 이를 계승해가는 것은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몫이다.
안성3·1운동기념관에서는 3월 1일부터 경기도지역 미전수 건국훈장전 ‘아름다운 그 역사를 기억하다’를 개최한다. 이번 삼일절에는 안성3·1운동기념관에서 뜻깊은 전시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