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로 만나는 여행

서운산자락이 품고 있는
고즈넉한 ‘석남사’

시민명예기자 이원희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며 부처님오신날이다. 성철 스님은 “집집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부모님입니다. 내 집안에 계시는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불공입니다. 거리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잘 받드는 것이 참된 불공입니다”라고 법문하셨다. 어린이도 발밑을 기는 벌레도 머리 위를 날아가는 새도 모두 부처님이라며, 수없이 많은 이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이라 하셨다. 잡아함경에서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큰 고통이다. 차례가 없고 남의 뜻을 두려워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공경하고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그것을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주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신 날을 맞이하여 천년고찰 석남사를 소개한다. 서운산자락이 품고 있는 고즈넉한 석남사는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단을 이루며 가람이 형성되어 있어 사찰로서 위엄을 갖추고 있다. 가장 높은 대웅전까지 이어진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절로 경건해진다. 석남사는 신라 680년(문무왕 20)에 고승 석선사(奭善師)가 창건했고, 고려 초기 해거국사가 중건했다. 이후 임진왜란 때에 전부 불타 없어졌으나, 해원선사가 1725년(영조 1)에 대웅전과 영산전의 기와를 교체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태종 7년에는 국가에 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절인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학이 날개를 편 듯 우아한
팔작지붕의 영산전
(보물 제823호)
대웅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8호)은 맞배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구조이며, 기단과 초석은 자연석을 활용했다. 내부 중앙에는 석가삼존불을 모셔 놓았고, 본존상이 있는 머리 위에 2층 구조의 닫집이 있다.
영산전은 암막새 기와에 ‘영조 1년(1725) 수리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모니 불상과 그 생애를 그린 그림을 모신 곳으로, 불단 좌우에는 부처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인 나한상을 모셨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튼튼하게 균형 잡힌 모습을 이루고 있으며 조선 초기에서 중기 사이의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듯 우아하다. 영산전 좌측에 2기의 3층 석탑이 나란히 건립되어 있으나 두 탑의 위치가 원위치인지는 알 수 없다. 좌측 탑은 225cm, 우측 탑은 232cm이며 조성수법과 그 형식 등으로 미루어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남사 전경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투박하나 친근한 인상의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석남사에서 서운산 정상을 향해 1km 정도 오르다 보면 암벽에 새겨진 석남사 마애여래입상을 만날 수 있다. 5.3m의 거대한 불상으로 얼굴 부분이 마모된 것을 제외하면 광배와 발밑의 연화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는 형태가 완전하다. 둥근 얼굴에 귀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크고 길다. 신체는 당당하고 옷은 어깨에 걸치고 가슴까지 들어 올린 팔에 소맷자락이 길게 늘어져 있다. 가슴에는 의복을 묶는 끈의 리본 매듭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 옷자락 밑으로 나온 발가락이 인상적인데 마치 맨발로 밭을 갈다가 온 농부 같은, 투박한 인상은 오히려 친근감을 준다. 이 마애불입상의 신체 비례와 착의법(着衣法)을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양식이 일정하게 형식화된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
영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