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손길

간결한 언어로 사랑을 노래하다
허영자 시인

‘시를 왜 쓰느냐고?/티 한 점 없는/순수한 기쁨/순수한 슬픔과/만나기 위해서지/
시를 왜 쓰느냐고?/참으로/아프게 뉘우쳐서/더러움을 깨끗이/씻어내기 위해서지/
시를 왜 쓰느냐고?/사랑하는 당신을/‘사랑한다’고/정직히 서슴없이/말하기 위해서지’
시론을 엿볼 수 있는 시 ‘무제’에서 순수한 기쁨과 슬픔을 만나고 잘못한 일을 뉘우치며 사랑함을 솔직하게 사랑한다
말하는 용기를 위해 시를 쓴다는 허영자 시인의 순수함과 올곧음과 단아함을 만났다.
시민명예기자 이원희
순수함과 올곧음과 단아함을 만나다
안성시 금석동에 자리한 집필실에서 만난 허영자 시인의 첫인상은 단아함이다. 안성시 한 자락에 집필실을 마련해 도시에서 벗어나 글도 쓰고 자연의 위로를 받고 있다며 이야기를 건넨다. 집필실도 시인을 닮아 단아하니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 그녀의 시에도 수식의 말이나 군더더기가 느껴지는 말이 배제되어 있다. “많은 뜻을 짧은 말속에 담고자 했다. 언어 절제는 자칫 시의 맥을 끊을 우려도 있어 시의 구조에 있어 빈틈없는 짜임새를 위해 객관성과 이지적인 자세를 갖고자 했다”라며 시인은 시론을 들려준다.
신서정의 뜻을 같이 한
여성 최초의 ‘청미’ 동인회 조직
허영자 시인은 196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 후, 계성 여중고 교사를 거쳐 2003년까지 성신여대 교수로 30여 년 재직했다. 2002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에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을 지냈다. 1963년 시문학 사상 최초 여성 동인회 ‘청미’를 조직하며 여성적인 섬세한 감성으로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하면서도 강렬한 생명력이 결합된 시풍을 완성하며 2013년, 50주년을 끝으로 해체했다.
첫 시집으로 ‘가슴엔 듯 눈엔 듯’을 시작으로 ‘빈 들판을 걸어가면’, ‘목마른 꿈으로써’, ‘은의 무게만큼’, ‘투명에 대하여 외’ 등 모두 9권의 시집을 냈다. ‘그 어둠과 빛의 사랑’, ‘얼음과 불꽃’ 등 8권의 시선집, 동시집으로 ‘어머니의 기도’, 시조집 ‘소멸의 기쁨’이 있다. 그 밖에 ‘한 송이 꽃도 당신 뜻으로’ 외 20여 권의 산문집도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편운문학상, 제1회 목월문학상, 박두진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허영자
그윽히
굽어보는 눈길

맑은 날엔
맑은 속에

비 오면
비 속에

이슬에
꽃에
샛별에

임아


온 삼라만상에

나는
그대를 본다
봄밤
허영자
꽃피는 봄밤에는
마음도 열리거라

옛날에 앓던 열병
새로 또 아려 오고

옛날에 기쁘던 일
새로 눈물 겨웁구나

임의 말씀 들리는
꽃피는 봄밤

목숨이 목숨이
이토록 향그런 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