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로 만나는 여행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을
거리에서 만나다
거리의 미륵불들

시민명예기자 이원희
고려 말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설계하고 건국한 삼봉 정도전은 ‘임금은 나라에 의존하고 나라는 백성에 의존하는 것이니, 백성이란 나라의 근본이고 임금의 하늘이다’라고 했다.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삼봉 정도전은 모든 통치의 힘은 소수 특권층이 아닌 모든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민본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게 보이지만 지혜로써 속일 수 없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면 복종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바로 떠날 것이다.
백성들이 따르고 떠나는 데 있어서는 털끝만치의 오차도 없다(下民至弱也 不可以力劫之也 至愚也 不可以智欺之也 得其心則服之 不得其心則去之 去就之間 不容毫髮焉 -‘정보위正寶位’ 중에서)’며, 민본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부국강병과 민생의 경제생활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삼봉 정도전의 꿈은 오늘도 이 땅에 흐르고 있다.
안성은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 전략적 요충지로 정치·사회적 변동기 때마다 환란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때마다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은 고통에 휩싸였고 마을 입구와 거리에 미륵불을 세워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갈망했다.
아양동 보살입상, 석불입상
(안성시 향토유적 제10호, 제15호)
아양동 보살입상, 석불입상(위치 : 안성시 내혜홀3길 7-1(아양동))
거리에서 만난 미륵불들은 대부분 불교적 관점의 정형화된 불상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의 생활상이 녹아든 마을 수호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양동 보살입상은 일제 때 수해로 목 부분이 파손되자 마을 사람들이 두레를 통해 쌀을 거두어 복원했다고 한다. 타원형의 얼굴에 화려한 화판(花瓣)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있으며, 투박하고 인체 비례를 무시하여 조성된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그림을 그린 듯하여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보살입상은 높이가 3.22m로 허리 아랫부분이 매몰되어 전체 높이를 알 수 없다. 아랫부분이 땅속에 묻혀있다면 소중한 문화유산이므로 정비해 전신을 다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양동 보살입상과 나란히 서 있는 석조불상 또한 하반신의 일부가 매몰되어 전체 높이를 알 수 없다. 석불입상은 계란형의 얼굴에 끝이 뾰족한 사다리꼴 모양의 장식이 없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꽉 다문 입의 얼굴 표정이 근엄해 보인다. 옷소매에는 세 가닥의 옷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석불입상은 보관이나 착의법 등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양성 석조여래입상
(안성시 향토유적 제39호)
양성 석조여래입상(위치 : 양성면 구장리 230-1)
양성면 구장리 마을 입구에서 약 200여 미터 직진 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돌면 오래된 팽나무 아래 미륵불을 만날 수 있다. 불상의 입체감을 위해 광배와 함께 부조로 조각되어 있으며, 옆에서 보면 앞으로 기울어져 있어 보수가 시급하다. 불상은 계란형 얼굴에 큰 눈과 늘어진 귀를 가지고 있다. 손 모양은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석불 앞에 배례석에 정교한 연꽃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계시던 어르신은 젊었을 때부터 정화수를 놓고 기도하던 곳인데 누군가 미륵불의 눈을 파서 훼손해 놓았다고 한탄하셨다.
대농리 석불입상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6호)
대농리 석불입상(위치 : 대덕면 대농리 91)
대농리 마을회관 왼편을 돌아 조금 오르면 소나무 숲에 순박한 고려 시대의 불상을 만나게 된다. 하단부가 땅에 묻혀 전체 높이는 알 수 없지만 높이는 2.2m로, 머리가 신체보다 크고 중절모 모양의 갓을 쓰고 있다. 원만한 얼굴에 이목구비를 단순히 표현하여 동자승처럼 천진난만한 느낌을 받는다. 가슴 아래 오른손은 보병의 윗부분을 잡고 있고 왼손은 보병 아래를 받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