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은 조선시대 무역의 중심지
안성장은 상업의 거점지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 급성장해 내륙 물자뿐 아니라 안성천을 통해 수산물까지 반입됐다. 영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안성군의 장시는 한양의 이현시장이나 칠패시장보다 커서 화물이 모여든다’했으며,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안성은 경기도와 호서지방 해협 사이에 위치하여 화물이 수용되고 공인과 상인이 모여들어 한남의 도회가 되었다’며 당시 안성이 교통의 요지가 됨과 동시에 물류 집산지로서의 큰 시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안성장에서 주로 거래되던 품목은 쌀, 보리, 무명, 삼베, 대추, 밤, 유기, 철물, 삿갓, 초립, 가죽신 등 안성의 주변 지역에서 집산된 것으로 없는 게 없었다. 영화로웠던 안성장이 오늘날 무역 중심에서 비껴간 연유를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서도 읽을 수 있다.
안성마곡시장(매매광경)
안성 옛 장터(주물전)
안성 유기장수
안성 우시장
소설 ‘허생전’ 속의 안성장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은 조선의 현실을 풍자한 소설로 허례허식과 매점매석이 가능한 조선의 허약한 경제구조와 실익에는 관심이 없는 정치를 비판하고 있다.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적인 가치만 중시하여 비웃음을 당하는 선비들의 의기와 강직, 청렴한 미덕은 오늘날 물질적인 가치와 눈앞의 이익만을 중요시하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을 주기도 한다. 허생이 양반으로서 돈을 버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문화자본이 도(道)와 덕(德)에 있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허생은 돈 만 냥을 빌려 한양으로 들어서는 관문이면서, 영남대로와 삼남대로가 합쳐지는 길목에 위치해 남쪽 지방에서 올라오는 모든 물건의 집결지였던 안성으로 내려와 대추와 밤 등 여러 과일들을 모두 사들인다. 과일을 구하지 못해 제사를 지내지 못할 정도가 되자 허생에게 찾아와 열 배를 줄 터이니 제발 다시 팔라고 사정한다. 과일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비싼 값에 되파는 방법으로 십만 냥을 번다. 허생은 “겨우 만 냥의 돈으로 나라의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 수 있었으니 이 나라가 얼마나 얕은지 짐작할 수 있다”라며 탄식한다. 허생전에는 유통구조를 꼬집는 대목도 있다.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진다”라며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역과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는 물류 운송 도로와 기반 시설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경부선 철도의 개통으로 안성장 쇠퇴
일제 강점기에 개통한 경부선은 안성을 통과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유통의 중심지였던 안성은 교통 중심지에서 벗어나 경제활동에 제약이 걸렸다. 1925년 ‘안성선’이 천안에서 안성 간 28.5Km가 개통된 후 1927년 장호원까지 연결되는 69.8Km 철도가 개통되어 경기 남부권과 충남권을 아우르는 시장 형성과 경제 상황이 다소 호전되었으나,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1972년을 기점으로 안성선은 여객 수송량이 감소되었고, 1989년 1월 안성선은 철거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더불어 전국 신흥도시에 공장제 기계 공업이 활성화됨에 따라 안성에서 생산됐던 각종 수공업 제품들의 생산지가 이전되거나 생산량이 감소되면서 안성장은 점점 축소되어 갔다.
이제 안성을 관통하는 제2경부 고속도로가 개통 예정(구리-안성 구간 2023년, 안성–세종 구간은 2024년)이며, 제4차 국가 철도망 구축계획 평택부발선(평택-안성-이천)이 최종 확정되어 안성철도시대의 재개막을 앞두고 있어 도로 인프라 구축으로 물류 중심도시로 다시 날아오르려 하고 있다.
안성구시장 추억의 6070거리
안성구시장 추억의 6070거리(우전대장간)
안성구시장 추억의 6070거리 골목풍경1
안성구시장 추억의 6070거리 골목풍경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