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은 예로부터 정치·문화적 중심지며 지정학적 요충지로 사회 변동기 때마다 전란에 휩싸였다.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안성인들은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켰다.
1236년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죽주산성에서 송문주 장군의 지휘 하에 물리쳤고, 공민왕 때에는 홍건적이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을 함락하고
계속 남진하여 안성지역까지 도달하였으나 1362년, 안성 현민들의 결집으로 홍건적을 퇴치하는 데 공헌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홍계남, 이덕남, 오정방, 김충수 등의 안성 출신 의병장들이 맹활약했다.
국가 위기 상황마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호국정신은 이후 안성 4.1만세 운동으로 메아리쳤다.
개인보다는 공익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안성인의 호국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가족사랑, 지역사랑, 나라사랑으로 흐르고 있다.
기자 이원희
임진왜란의 숨겨진 영웅 홍계남 장군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 장군에 비해 우리는 홍계남 장군을 잘 모른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이름만 듣고도 무서워할 정도로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공적에 비해 홍계남 장군은 알려지지 않았다. 주로 유격(遊擊) 전술로 왜군들을 격파했기에 정사(正史)에 기록되지 않은 탓이다. 홍계남 장군(1564~1597)은 서운면 양촌리에서 태어났다. 담력과 용맹이 뛰어나 말타기, 활쏘기에 능하여 금군에 소속되어 1590년 일본 통신사의 군관으로 동행했다. 일본인과 무술 겨루기를 하여 그들을 탄복시켰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부친인 홍자수와 네 명의 형인 진(震), 제(霽), 전(電), 뇌(雷)와 사촌 형 이덕남과 더불어 의병을 모아 왜적을 기습하여 적의 기세를 꺾었다. 장군이 다른 곳에서 싸우는 사이 부친이 전사하자 단신으로 적진으로 들어가 부친의 시체를 찾았다. 적이 사면으로 포위하였으나 왼손으로 아버지의 시체를 안고 오른손으로 칼을 휘둘러 대적하니 적이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그 뒤로 왜적이 노략질할 때 사람들이 홍계남의 이름을 부르면 놀라 도망쳐 달아났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수원판관 겸 기호양도(畿湖兩道) 조방장(助防將:주장을 도와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을 제수하였고, 그 후 영천 군수 겸 경상도 조방장이 되었다. 1597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치자 위국 충정을 기려 정문을 세우고, 판돈녕부사1)에 추증하였다. 안성시 미양면 구수리에 장군을 기리기 위해 안성 군민들이 세운 전적비인 홍계남 장군 고루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1호)가 있다.
홍계남 장군 고루비
홍계남은 ‘홍길동전’의 실제 모델
홍계남은 홍자수와 사화(士禍)의 소용돌이 속에서 양갓집 규수에서 노비로 전락한 옥녀 사이, 첩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얼제도가 심했던 조선 시대에 적자보다 총명하고 굳세고 꼿꼿한 기상을 지녔지만 신분제도 때문에 문과에 응시할 수 없었다. 무과로 등용된 홍계남은 임진왜란에 의병장으로 참전해 무공을 세우고 서출로는 관례 없는 영천 군수에 오르지만, 자신과 같은 서자 출신을 보살폈다는 이유로 역모죄를 뒤집어쓴 비운의 장수 홍계남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이병주(1921~1992) 작가는 역사소설 ‘천명: 영웅 홍계남을 위하여’를 집필한다. 작가는 홍계남을 ‘홍길동전’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로 보고 있다. ‘서출의 아들, 뛰어난 재질, 비범한 무용, 그러나 그 웅지 중도에 산화한 일생을 음미할 즈음에 허균은 홀연 ‘홍길동전’의 상을 얻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라며 ‘홍길동전’과 홍계남 장군의 관련성을 소설 속에 설명해 놓았다.
외숙 홍자수와 함께 수차례 왜적을 격퇴한 이덕남 장군
이덕남 장군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외숙인 홍자수 집에서 성장한다. 20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이어 훈련원 부장으로 있다가 임진왜란 직전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자수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웠다. 서운산정에 성루를 구축하여 의병 3천 명을 거느리고 홍계남 장군은 좌성, 이덕남 장군이 우성을 맡았다. 무기가 없어 농기구를 녹여 만들어 싸우며 왜적을 수차례 격퇴했다.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왜적들의 연합군이 너무 강하여 외숙 홍자수와 함께 죽주산성에서 장렬히 전사하여 미양면 구수리에 안장됐다. 후에 병조참의(兵曹參議: 병조에 속한 정삼품 벼슬)에 추증되었다.
이덕남 장군 묘
이덕남 장군의 사당 진양사
홍계남 장군 고루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1호)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서운로 539-32
이덕남 장군 묘
안성시 미양면 구수리 산85-1
1) 돈령부: 조선시대, 왕실과 가까운 친척을 위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 돈령부의 종일품 벼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