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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을 나누는
12월에 효자비에서
사랑의 근원을 찾다

12월은 사랑의 계절이다.
감각적 욕망을 발산하는 계절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귀히 여기는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달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나를 존재하게 한 사랑의 근원을 생각해 본다. 부모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존재의 근원 그 자체다. 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윗사람인 부모가 아랫사람인 자식을 사랑하기는 쉬워도,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요즘 들어 가슴을 친다.
조선시대에는 효자들의 지극한 효심을 문집에, 효자비(孝子碑)에 비문으로 실어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게 했다.
주기적으로 전국 각지의 효자들을 조사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표상을 내렸다. 신분제도가 아주 엄했어도 효에 관해서는
양반 노비 차별을 두지 않았다. 신분이 가장 낮고 비참한 존재인 노비의 효자비가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안성시는 다른 시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효자비를 보유하고 있다.
안성 낙원역사공원에 있는 관노 이주 효자비는 안성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료로서 의미가 깊다.
기자 이원희
이주 효자비(가운데)
이주 효자비
이주는 안성군의 관노였다. 네 살 때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를 조석으로 지극히 공경하였으며 어머니가 병이 들어 돌아가시려 하자 단지(斷指 손가락을 깨물거나 잘라 피를 내어 먹이는 일) 수혈을 하고, 모친이 돌아가시자 3년 상을 치르고 어릴 때 돌아가신 부친을 위하여 다시 3년 상을 치렀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612년(광해군 4)에 효자문을 받았으나 중간에 파괴되자 1706년(숙종 32) 외증손 이막산과 현손 이희선이 다시 세웠다. 이주의 경우는 노비였지만 시묘살이를 했고 100년이 지난 후 그의 후손들이 효자비를 재건할 정도였다면 상당한 재산을 보유했을 것이다. 이런 재력이 있는 노비들은 경제의 중심지인 한양과 전국의 상업중심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안성이 경제 요충지였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이다. 이주의 사적은 『여지도서』에도 기록되어 있어 문헌적으로도 증명되는 사적 희귀성이 높이 평가되는 귀중한 문화재다.

이주 효자비

  • 낙원동 609-1 안성낙원역사공원
유해옥 효자비각
유해옥 효자비
유해옥은 안성시 대덕면 보동리에서 태어나 3세에 부친상을 당해 가세가 기울었지만 어머니가 일제강점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가문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1934년 나이 43세에 어머니가 중병으로 사경을 헤매자 하늘에 소생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고,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손가락을 잘라 수혈을 하여 생명을 연장했다. 이러한 행실이 알려지고 귀감이 되어 마을 주민들의 발의로 1934년 효자비가 건립되었다. 효자비는 본래 대덕면 보동리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인 동신리 송동 마을 입구로 이전하여 보존하고 있다.

유해옥 효자비

  • 보개면 동신리 478-4
경주 최씨 효행비
1872년 금광면 사흥리 동막마을에서 출생한 경주 최씨는 열아홉 살에 신천 강씨의 종손 강병하와 혼인했다. 종부로서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남편을 공경했으며, 자녀 교육에 힘써 현모양처의 모범을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을 친부모처럼 공경하여 효행이 널리 알려졌고, 조정에도 이 사실이 알려져 포상이 내려졌다. 경주 최씨 효행비는 1946년에 그의 아들인 강기석이 어머니의 효부 행적을 기록하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경주 최씨 효행비

  • 금광면 현곡리 산 18
임월홍 창효비
임월홍은 금광면 금광리 하록동에서 태어났다. 평상시 마을 어른들을 부모처럼 섬겼으며 걸인들을 구휼하는데 앞장섰던 임월홍은 세 살 때 부친상을 당했으나 너무 어려 복상(服喪:상을 당했을 때 상복을 입는 것)하지 못한 것을 평생 한으로 여겼으며, 가난한 형편에도 마음과 정성으로 어머니를 봉양했다. 어머니가 이름 모를 병으로 사망하자 산소 옆에 묘막을 짓고 100일 기도를 올리며 어머니의 영혼을 위로한 그의 효심에 마을 사람들이 임월홍 생전에 임월홍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행비다.

임월홍 창효비

  • 금광면 현곡리 산 18
경주 최씨 효행비(좌) 임월홍 창효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