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 맞으러 왔어요”
영양 주사를 원해 진료실을 찾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피로감과 식욕저하를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영양제를 맞으면 정말 없던 기운이 생기고 사라진 입맛이 돌아올까요?
영양제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티옥트산, 글루타티온 등의 ○○주사라는 속칭이 붙은 것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임상연구가 부족하고 근거수준이 미약합니다. 대한의사협회도 권고지침을 통해 과대광고에 대한 대책이 필요함을 언급하였으니, 다른 주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하얀 영양제 맞으러 왔다고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얀 것은 비경구영양제로, 포도당, 지질, 그리고 아미노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분 중 지질이 하얀색을 띄게 하는 것입니다. 비경구영양제의 본래 목적은 입으로 식사를 할 수 없는, 예를 들면 중증 복부질환으로 치료 중이거나 외과적 복부 수술을 한 환자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 보험 적용이 가능합니다.
만성 탈수나 심한 영양불균형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영양제의 주사가 상태를 개선시켜 피로 회복 효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길어야 2-3일 정도 지속될 것입니다. 평소 적절한 식사를 하고 있는 분들에게 실제 효과는 없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도 영양제를 맞고 기운이 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위약(플라시보) 효과'로 설명합니다. 주사를 맞았다는 사실이 심리적 안정을 줘 몸이 회복되는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비경구영양제는 오히려 식욕의 감소를 초래합니다. 인위적으로 영양소를 혈관으로 주입하면 허기를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그렐린은 감소되고, 배부름을 감지하게 하는 펩타이드YY는 증가하게 되어 식욕 감퇴를 유발하게 됩니다.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습니다. 당뇨병 환자에게는 고혈당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심부전이나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몸속 혈액량이 갑자기 증가해 혈압상승과 심장부담 증가로 호흡곤란이나 부종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위약 효과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성 피로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 분이 그나마 영양제를 맞은 후 기운이 나는 경험을 했기에 또 맞고 싶어 진료실을 찾았는데, “효과가 없으니 맞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의학적 ‘오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분들에게는, 비급여 항목이라 비싼 영양제 대신 조금이라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요리해 드시라고 권유를 드리고 싶습니다. 소화된 영양소가 신체의 요구량에 맞추어 적절히 소화관에서 흡수되어 신체 내의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또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오감이 충족되는 과정입니다. 입맛이 온전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마음이 가는 음식을 찾아 오감으로 즐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